나의 뿌리....시조....창녕성씨...성인보묘소
昌寧成氏 始祖 中尹公 성인보(成仁輔)墓所
*위치 : 창녕군 대지면 모산리(맥산)
모산리 뒷산에 오르면 "始祖高麗中尹成公仁輔之墓"의 성씨의 시조인 중윤공
成仁輔의 묘가 있다. 墓域의 주위 환경을 잘 정비하여 後孫들의 조상위하는
정성을 엿볼 수 있으니 보는 자의 흐뭇한 마음이다.
<始祖碑>
入首와 坐向을 살펴보니 亥坐巳向으로 東南쪽을 바라보며 물은 모산을 휘감고
左水到右한다.
산세를 살펴보면 모산 북으로는 화왕산과 전남산이 높이 솟아 병풍을 두른 듯 멀리
감싸주고 동으로는 관주산이 글자 그대로 구슬을 꿘 듯한 둥근 산봉우리들이 솟아
장관을 이룬다.
남동쪽으로는 영산인 진산 태자산, 반월산의 기이한 영봉들이 삼천분대(三千粉袋)
로 나열되어 혈처를 조응하고 서쪽으로는 우둔산, 미타산이 혹은 높고 혹은 낮게
솟아 낙동강 물줄기는 주산 맥산(麥山)을 감싸 흘러 남지에서 진주강과 합류되어
바다로 들어가니 山水에 수려한 경치 또한 금수(錦繡)와 같다.
어찌 이 후손(後孫)들의 영달함이 萬代로 이어나가지 않을까 보냐...............
<始祖墓>
成氏는 조선에서 상신 5명과 대제학 2명, 청백리 5명을 내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석학 절신을 낳았다. 始祖 아들인 성송국(成松國)은 아들 공필, 한필 형제에서
각각 路上派, 路下派로 갈렸다. 그중에서도 영의정 성희안을 빼고는 거의가
路上派의 `三谷집` 후손들이다. 즉 獨谷 성석린(영상), 유곡 성석용(대제학), 桑谷
성석연(예판)의 3형제를 가리킨다. 후대의 사육신 성삼문, 생육신 성담수는 성삼문
과 재종간이다.
<案山>
(始祖墓 전설)
창녕성씨(昌寧成氏)는 고려때 향직의 우두머리인 호장(戶長) 중윤(中尹)을 역임한
성인보(成仁輔)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 의례적으로 시조관련 일화가 있기 마련인데,
창녕성씨시조 성인보의 묘자리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中尹公(성인보)의 아들 시중공 성송국(成松國)은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아버지와
함께 송경(松京:오늘날의 황해도 개성)에 갔다가, 부친이신 중윤공이 병사하시자,
통곡하며 그 시신을 직접 질머지고 고향인 창녕까지 왔다고 한다.
이에 昌寧에 이르러서 하늘이 감응하여 온천지에 흰눈을 내리고, 호랑이로 하여금
발자취를 내어 명당자리까지 안내했으며 이곳이 昌寧成氏 始祖 中尹公의 墓地가
되었다. -태극풍수학회